I Feel the Earth Move 할말이많아요

가만히 생각해보면 사실 내겐 너무도 많은 것들이 주어졌었다는 것이 마치 깨달음처럼 머릿 속을 울려온다. 엄살쟁이라, 늘상 힘들어 죽겠다고 투덜투덜 댔지만, 난 본인의 노력에 비하면 너무도 과분한 기회들을 많이 혜택받았다. 슬쩍 자부심을 가져보자면 그 기회들을 놓치지 않고 잘 캐치했었다는 점만은 스스로에게 칭찬해주고 싶다. 물론 그 뒷처리를 제대로 하지 못해 모든게 어그러진 후에 울먹울먹 힘들어 죽겠다- 엄살을 부렸다는 것은 부인 할 수 없는 부끄러움이지만. 하지만 난 그래서 또 후회하지 않는다. 삼남매의 맏이로 자라나 어쩔 수 없이 몸에 배어진 책임감 때문일런지도 모르겠다. 다른 이의 책임까지 떠맡기는 꺼려하지만, 내 영역 안의 것만큼은 온전히 나의 것이다. 선택도, 결과도 모두 내게 맡겨진 거다. 적어도 내 스스로 한 선택에는 후회하지 않아.

2004년 여름, 한국의 친구들보다 1년 6개월 늦게 미국의 고등학교를 졸업하고, 그 이후로 이어진 내 생활은 분명 '실패'라 불릴 수 있을 것들이었다. 우울증, 위장 장애, 갈수록 바닥을 뚫으려는 성적들. 우스개 소리처럼 내 인생의 암흑기야- 라고 말했지만 정말은 울었다. 나처럼 단순하게 앞만 보고, 한가지만 보고 달려나가던 사람은 이것저것 문제가 복잡해지면서 패닉에 빠져버리나 보다. 울고 또 울었다. 얼마나 울었는지 모르겠다. 하루에도 서너번씩 문득문득 솟구치는 격한 감정의 정체를 지금도 정확히 알지는 못하지만, 정말 섧게, 목놓아서 울어댔다. 내 목표를 잃었다고 생각했다. 아니, 내 인생의 목표는 오래 전부터 변하지 않고 그 곳 그 자리에 있건만, 갑자기 내 앞의 길이 지워져버린 듯, 어떻게 가야할지 알 수가 없었다. 아버지 사업이 망하고, 엄마께서 하시던 사업을 접고 미국에 와서 궂은 식당일을 하며 손가락 살점이 떨어져나가도 돈이 없어 병원 치료도 제대로 못받으셔도, 동생과 내가 학교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더래도- 내 오만함, 이라고도 불릴 수 있을 자신감만은 잃지 않을거라고 스스로를 너무 굳세게 믿고 있었나보다. 문득 자신감을 잃어버린 나를 발견했을 때. 모든 게 무기력해 졌을 때. 주변에서 무슨 말을 해도 믿을 수가 없었다. 내 스스로를. 나는 멈췄다.

그런 점에서 나는 현재 일하고 있는 학원의 원장 선생님께 참 많이 감사한다. 내가 미술을 배울 수 있게 그 길을 열어주신 분으로서, 은사로서의 감사함보다도 더 큰 감사함을 전해드리고 싶다. 솔직히 선생님과 나는 많이 다르다고 느끼고있다. 하지만 너무 많은 것을 배웠다. 너무 많은 걸 주셨다. 학생을 대하는 법, 가르치는 법, 월급, 사람을 만나는 법 등등 그런 게 아니다. (물론 그런 것들에도 많이 감사하고 있다.) 사실 아직도 자신은 없다.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는 느낌이지만- 그래도 최소한 '제자리 걸음'이나마 하게 해주셨다. 가만히 멈춰서 가라앉으려던 나를 움직여야겠다고 느끼게 해주셨다.

그래서 사실은 너무 죄송하다. 나는 '떠나야 겠다'라고 생각하고 있으니까. 내겐 과분한 곳이란 건 안다. 하지만 내가 머무를 곳은 아닌 것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. 내 속이 조금 더 자라있을 때 현재의 학원에 들어왔다면, 난 오래오래 붙어있고 싶었을지도 모르겠다. 하지만 지금은 떠나기로 했다. 그대로 고여 썪어버리지 않도록. 강이 되어 흘러 바다로 갈 수 있도록.

내게 주어진 것들, 다 담을 수 있을 내가 되기 위해, 지금은 좀 더 넓어져야 할 때다.

덧. 제목은 Mandy Moore의 'Coverage' track No. 4